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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버서스 : 뒤바뀐 선과악 정의를 찾아 나아가는 영웅들

by umin2bada 2025. 5. 28.

《버서스》(VERSUS)는 《원펀맨》과 《모브사이코 100》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ONE이 스토리를 맡고, 유명 작가 아즈마 카즈마가 작화를 담당한 본격 판타지 액션 만화다. 세계는 마왕과 47명의 장군들이 지배하는 절망의 시대에 돌입했으며, 인류는 오랜 시간 압도적인 전력 차이 앞에 무력하게 살아간다. 이에 맞서기 위해 인간 측은 47명의 '영웅'을 양성하고, 각각을 마왕 장군과 '1대 1로' 싸우게 하려는 최후의 전면전을 계획한다. 작품은 이러한 설정을 바탕으로, 전형적인 판타지 배틀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인간의 이기심, 사회 시스템의 허점,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를 파고드는 다층적인 구조를 지닌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독립된 사연과 철학을 지니며, 전투와 심리 묘사, 대사 하나하나에 깊은 주제가 내포되어 있어 단순한 액션물의 범주를 넘는다. 전쟁을 이용하는 권력자들과, 싸움으로밖에 생존을 증명할 수 없는 영웅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세계의 진실이 서서히 밝혀지며 이야기는 거대한 반전을 향해 질주한다. 《버서스》는 단순한 판타지 전쟁 만화가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 진짜 싸움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묻는 철학적 텍스트이자, 극한의 세계 속에서도 희망과 연대를 포기하지 않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만화 "버서스" 이미지

47인의 영웅과 마왕군, 희망 없는 전쟁의 서막

《버서스》는 극단적인 설정으로 시작된다. 마왕과 그 휘하의 47명의 강력한 장군들은 수세기에 걸쳐 인간 세계를 억누르고, 모든 국가와 문명을 붕괴시켜 왔다. 인간들은 거의 노예처럼 살아가며, 모든 저항은 무력하게 짓밟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 측은 마지막 선택으로 47명의 영웅을 각국에서 엄선해 양성하고, 그들을 마왕군의 장군들과 ‘일대일 전투’로 맞서게 하는 계획을 수립한다. 이 설정은 겉보기에는 전형적인 '용사 대 마왕' 구조로 보일 수 있으나, 《버서스》는 그 기대를 무너뜨린다. 영웅들의 출신 배경은 제각기 다르며, 모두가 정의롭고 선량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들 중 다수는 나라의 정치적 계산이나 개인적 야망, 심지어는 유전자 조작이나 세뇌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존재들이며, 영웅이라는 타이틀을 갖췄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니다. 마왕군의 장군들 또한 무조건적인 악이 아니다. 그들 중 몇몇은 오히려 인간보다 더 합리적이거나 윤리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전투의 목적 또한 단순한 파괴가 아닌, 이 세계의 구조에 대한 근본적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버서스》는 전쟁의 표면 뒤에 있는 복잡한 이해관계와 이념 충돌을 정교하게 그려내며, 독자는 ‘누가 진짜 적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전쟁은 단지 힘의 싸움이 아니라,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한 무대’이며, 그 무대 위에서 영웅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이 처한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무겁고 잔혹하다. 《버서스》는 전형을 파괴함으로써 독자에게 더 큰 서사의 깊이를 제공하며, 진정한 전쟁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정의는 누가 정하는가, 뒤바뀐 선악의 경계

《버서스》가 단순한 전투 중심의 작품에서 벗어나 철학적 텍스트로 기능하는 이유는 바로 ‘정의’라는 개념을 상대화한다는 데 있다. 인간과 마왕의 구도에서 일반적인 독자는 자연스레 인간의 편에 감정이입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작중에 등장하는 인간 국가들은 대부분 부패했고, 영웅을 정치 도구로만 이용하며, 백성의 안위보다 체제 유지를 더 중시한다. 그와 반대로 마왕 측은 질서 있고 조직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움직이며, 일부 장군들은 오히려 전쟁을 막기 위해 인간 측에 평화적 제안을 보내기도 한다. 이런 복잡한 구조 속에서 독자는 무엇이 진짜 선이고, 누가 악인지 혼란에 빠지게 되며, 그 혼란이 작품의 긴장감을 높이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영웅들의 내부에서도 갈등이 끊이지 않는데, 어떤 이는 인간을 위해 싸우기보다는 자신의 권력과 명성을 위해 싸우고, 또 어떤 이는 영웅이라는 타이틀에 짓눌려 정신적으로 붕괴되어 간다. 그런 가운데, 주인공 격 인물은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과 싸우며, ‘나는 왜 싸우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버서스》는 단지 싸움의 결과보다, 싸움의 ‘의미’를 중심에 두고 전개된다. 어떤 이상이나 대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폭력도, 개인적인 복수라는 사적 감정도, 전장에서 모두 같은 무게로 다뤄진다. 이처럼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모든 캐릭터가 스스로의 정의를 주장하며 충돌하는 구조는 작품을 한층 성숙하게 만들며, 독자들에게 윤리적 선택의 난제를 제시한다. 결국 《버서스》는 ‘정의는 누가 정하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독자 스스로도 서사 속 판단자가 되기를 요구하는 지적 도전의 장이다.


종말 이후의 희망, 진실에 도달하는 영웅들의 여정

《버서스》는 전쟁과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를 무대로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이다. 전투가 계속될수록 등장인물들은 하나둘 진실에 가까워지고, 그것은 단순히 적의 정보나 약점이 아닌, 이 세계 자체의 구조, 마왕과 인간이 왜 싸울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배경이다. 특히 이야기 중반 이후, 세계는 점점 더 무너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전체의 미래를 바꾸는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면서, ‘개인의 행동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서서히 드러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때로 이기적이고 잔혹하지만, 동시에 희망을 잃지 않고 서로를 구원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버서스》는 디스토피아 속에서도 감정적인 연결을 강조한다. 주인공과 동료들의 관계는 단순한 동료애를 넘어서,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자 마지막 등불이 된다. 영웅이라는 명칭에 숨겨진 상처와 압박, 그리고 그들이 끝내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독자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싸워서 이기는 것’만이 아닌, ‘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어떤 전쟁도 진정한 승리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버서스》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 숨겨진 빛을 포기하지 않는 작품이다. 엔딩으로 향할수록 선택과 희생, 신념과 오해가 교차하며 이야기의 밀도는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하나의 싸움이 끝나면 또 다른 갈등이 이어지는 순환 속에서 독자는 ‘이 싸움은 끝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게 된다. 그러나 작품은 절망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고, 다시 일어서는 인간의 의지를 그리며, 가장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도 희망이란 반드시 남는다고 말한다. 《버서스》는 싸움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인간의 가능성으로 귀결되는, 거대한 전쟁을 통한 인간성 탐구의 서사시이다.